거울, 무대화

* 거울상은 자아를 비추고, 자아의 이미지를 확정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거울상은 자아를 끊임없이 추인하고, 주체는 거울상을 통해 자아를 끊임없이 추인받고자 한다. 왜냐하면 주체는 무의식적으로, 확정된 거울상이야말로 자아가 무대화-사회화하기 위한 전제 조건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화란 꼭 연극적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큰 타자의 시선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무대화라는 전제 없이 거울상에 집착하는 법은 없다.

 그런데 거울상 속의 나는 주체와 다르다. 그 둘을 동일시함으로써 주체는 자신의 존재-주체의 차원을 일정하게 소외시키게 된다. 존재는 무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존재는 속성상 실재에 가깝고, 불안하고, 돌발적이고, 통제불가능하다. 때문에 주이상스는 존재의 차원에서 자아에게 도래하는 어떤 것이겠지....이야기가 샜는데....돌아가서 그렇다면 자신의 거울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혹은 거울상을 지나치게 불신하는 주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 원인은 해당 주체의 무대화 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무대화는 사회화의 차원에서 확정된, 추인된 '자아'를 거울상을 통해 확인받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큰타자에 의해 추인받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 불안, 균열에 사로잡힌 주체에게 무대화는 결격 사유를 추궁받는 장소다. 결국 이와 같은 공포가 주체의 '거울상'을 뒤흔드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체가 일관된, 확정된, 추인된 거울상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무대화'가 훼손된 주체를 폭로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원래 거울은 고체가 아니라, 점성이 높은 액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거울의 속성은 '무대화'와 '거울상' 사이의 관계가 언제나 일관된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불안의 관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거의 모든 주체들은 이와 같은 무대화와 거울상 사이의 갈등을 감내하기 마련이다. 다만, 무대화에 대해 어떤 공포와 불안을 갖느냐에 따라 동일시가 강한 거울상을 갖느냐(즉 주체와 거울상의 싱크로율이 높은), 아니면 존재가 채무자처럼 주체를 닦달하는 '균열된 거울상'(싱크로율이 낮은)을 갖느냐의 극단적 경우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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