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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 2

* 연애의 목적의 해피엔딩은, 강혜정이 다시 박해일을 찾아간 시점이 아니라, 강혜정이 돌변해서 박해일을 고발하는 지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강혜정이 피해자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박해일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순간은 강혜정이 자신의 존엄을 되찾는 순간이고, 사랑은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존엄을, 어떤 방법으로든 지켜주는 일이어야 한다. 우리는 피해자를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너무 나약해서 피해자가 그 자리를 벗어나 온전해질 때에만 그를 사랑할 수 있다. 로맨스는 위로가 아니니까......    강혜정이 피해자의 자리로부터 벗어나 온전해지는 단순한 방법은 스스로 가해자의 자리를 선취하는 것이다. 짐승같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해자로의 자기 전환에서 필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증오를 귀속시킬 수 있는 나 아닌, 다른 누구이다. 피해자가 극도로 고립된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은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쉽다는 것 역시 비인간적이지만, 자연스럽다.    로맨스는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이 엄연한 진실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랑이고 나발이고, 다 거짓말이다. 연애의 목적의 리얼리티는 그 고발의 순간에 박해일이 스스로를 피해자의 자리에 몰아넣지 않고, 희생자를 자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강혜정이 가해자의 자리를 적극적을 선취하는 순간에 있다. 피해자에 대한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탈정치의 공간은 이와 같은 '가해자의 존엄'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가 없다. 여담이지만, 연애의 목적에 나오는 이들 중에 가장 로맨스가 필요한 존재는 '국어 선생'일 것이다. 자각증상 없는, 혹은 자각 증상을 적극적으로 지워버린 피해자는 자각증상 없는 가해자가 되기 쉬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