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 2011의 게시물 표시

유나바머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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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니까 나는 가끔 내가 유나바머가 되어서 건물을 폭파시키는 몽상을 하는데, 음...이를테면 조선일보사를 폭파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럼 아마도 극우파들이 들고 일어나서 우리나라 진보 공동체들을 모조리 다 조질 것이다... 머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럼 도대체 뭘 전략적으로 폭파시켜야 이와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을까...피할 수 없겠지? 그, 그럼 한겨레신문사나 경향신문사를 폭파시켜야 하나?? 아니, 근데 나는 아직도 정태춘의 노래가 좋다...나의 미스테리 가운데 하나....

노출증

* 거울아, 거울아, 동화 속에서 마녀는 거울에게 묻는다. 그러나 백설공주는 거울을 가지지 않는데, 사회적으로 승인된 자아상이란 이처럼 거울을 내면화하거나 은폐한 자아라고 할 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일관된 거울상을 지닌 이들은 더 이상 거울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일관된 거울상이란 결국 사회적으로 승인된 자아 이상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때문에 끊임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자아,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거울상을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자아는 확고한, 승인된 자아 이상을 획득하지 못한 주체의 증거라고 하겠다. 한 마디로 마녀가 거울에게 물어보는 행위는 마녀가 사회적으로 승인받지 못한 자신의 자아를 벌충하고자 하는 강박 때문이다.  그런데, 거울은 이처럼 확정되지 못한 자아를 확인해주는 기능과 동시에 다시 거울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지금의 자아를 유예시켜 주기도 한다. 즉 다시 거울 앞에 설 때까지 나는 지금의 불확정적이고, 승인되지 못한 나를 처벌하지 않고 유예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노출증이 반복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자기 처벌을 유예시키는 쾌락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부터 우리는 외설적이고 노골적이고 비인간적인 어떤 것을 솔직한 것으로, 내면에 성실한 것으로 호명해오고 있는데, 이 같은 사회적 노출증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망가지거나, 깨진 자기 정체성을 유예시킴으로써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차라리 불안을 살아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명선? 아니 생활가능선..

* 그러니까 전두엽을 다친 이후에 나는 죽어도 일곱시간은 넘게 자야 다음날 정상적인, 두통이나 무기력증이 없는 생활이 가능하다. 나의 신경외과 선생님은 전공이 머 아이들인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컴퓨터를 통해 얻는 정보의 99%를 정보가 아니라, 그냥 쓰레기로 취급한다고 한다. 뇌는 인터넷과 같은 매체를 통해서 얻은 정보를 처리할 때 사고 회로가 움직이기보다, 그저 기계적 반사 회로가 반응을 보일 뿐이라는 거다. 특히 게임 중에는 이 같은 현상이 극대화 되어서 이건 뭐 그냥 반사 회로만 미친듯이 돌아간다나....  아마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주로 치료하다 보니 그렇겠지만, 아무튼 뭐 전문가의 말이니 새겨들어야겠다, 생각은 하지만 그의 저 완강한 태도 때문에 나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해서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아무튼 일곱시간 이상 잠을 자면, 나는 좀 공격적인 인간이 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컨디션이 좋을수록 반사회적이야. 흠...경험적 사실인데 나는야 반사회적일 때 일도 잘 하는 것 같다. 흠냐..좀 이상한 인과론이긴 한데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