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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네

자유냐, 목숨이냐

* 자유냐, 목숨이냐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는 질문에는 자유와 목숨, 두 가지가 다 가능한, 이를테면 공통분모를 제거한다는 전제가 은폐되어 있다. 자유를 선택하면 목숨이 없는데, 목숨이 없는 자유는 불가능한 것이니까... 그런데, 그 은폐된 공통분모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는 중요한 문제다. 그 공통분모가 자유냐 목숨이냐의 이분법 내부의 교집합에 해당되는 것인지, 아니면 자유냐 목숨이냐라는 질문 전체의 바깥, 그 예외적 존재로 볼 것인지는 사유 전체의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할 수 있다.    라캉은 저 중요한 갈림길의 존재를 나한테 알려준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는 저 두 길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한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이해한 라캉은 그렇다. 그는 타인의 모순을 지적할 때는 그들의 이분법 내부의 교집합과 그 어두운 단면인 섹터주의를 비판하지만, 그러나 실재의 도래가 저 예외적 존재로부터 오는 것인지, 은폐된 교집합의 장에서 일어나는 돌발인지를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공부가 부족한 것이기도 하겟지만...    내가 들뢰즈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유는 저 갈림길의 존재가 선명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보신당과 민노당이 다시 합당 논의에 들어갈 것 같다. 합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연합. 좌파들은 저 둘 내부의 은폐된 공통분모, 혹은 폐쇄된 섹터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들 바깥의 돌발적 예외가 될 것인가.....여기까지가 금요일 밤 문득 내가 생각한 내용이다. 친구와 친구의 애인과 그 애인의 친구들과 어쩌다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친구 애인 왈 친구 가운데 A양과 B양 중 누가 더 이쁘냐는 거다.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생각이 내달렸다.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기관차처럼 자유냐, 목숨이냐부터 진보신당의 좌파들 생각까지. 피곤하면 생각이 내달린다. 머 한 마디도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전두엽 장애인가, 싶었다.   * 아니 시발 그럼 통닭 배달하는 애들은 무슨 유령이냐구. 치킨 전쟁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