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 2010의 게시물 표시

금지와 소외

* 그러므로 소외는 '금지'안으로 편입하기 위한 절차라는 거다. 통과의례라는 말이라고 해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금지라고 해서, 금기나 통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금지'는 타자가 이루어놓은 질서, 체계의 전체를 지칭하는 상징적 용어라고 해야 맞다. 타자의 질서 전체를 '금지'라는 말로 굳이 대표하고자 하는 이유는 뭘까. 금지가 미끄러지는 질서의 연쇄를 못박아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고정되지 못한 체계는 미끄러진다.    뭐 이를테면 '남자'라는 시니피앙이 지시하는 것이 고정돼 있지 않다고 가정해보자. '남자'가 다리미를 지시하거나, 남자가 벽돌을 뜻하거나, 고양이를 뜻할 수도 있다. 그와 같은  체계는 '의미화'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의미화가 불가능하면? 자아의 생성 같은 일은 없는 거다. '의미'라는 건 별 것이 아니다. 자아는 저 질서, 그러니까 타자들의 체계에 편입되어 생기는 일종의 피드백과 같은 현상이다. 자아 역시 타자들의 체계에 소속되어 체계 전반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받기도 한다. 요컨대,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만큼 이 '피드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반대로 감정의 탈락, 배제 만큼 이 '피드백'의 접촉불량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저 질서의 체계 안으로 편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실패하였다면 어떤 전략을 선택하게 될까. 그 한가지는 자발적 소외이고, 그 두번째는 일종의 히스테리적 자아의 소환이다. 그 두가지는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뭐 사실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에서 당신이 저  질서의 체계 안에 초대받지 못했다면, 당신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소외'의 절차를 다시 한번 거쳐 '질서' 안에 편입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