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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의식이라는 환상

* 당파성은 계급 이해에 기반한 호명이다. 그 호명을 통해 당파성에 입각한 주체가 태어나는 것이고, 주체는 자기가 소속된 그 호명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이겠지.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계급 이해가 당파성을 가진 주체를 모조리 해명할 수는 없다. 당파성 자체가 수많은 호명으로 구성된 복잡성과 호명을 넘어서는 과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계급 이해와 당파성 간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므로 다시 유물론자는 이와 같은 간극을 좁히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지향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될 것이고, 이것이 정치적 주체가 탄생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꼬뮤니스트는 계급이해의 해명과 계급투쟁의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코뮌을 지향하는 사람이지, 계급의식의 동어반복과 자기 확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꼬뮤니스트라는 거울상에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코뮌이 복무하고 지향하는 가치와 미래상이 다른 공동체적 이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확정하는 일이 꼬뮤니스트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유물론은 이와같은 특정한 공동체적 이상이 그것의 물질적 기반과 지금 얼마나 가까운지를 해명해야 하고, 그것의 격차를 줄이는 일일 것이다.  계급의식이 계급이해로부터 점점 더 괴리되어 마침내 독립적인 자기 규정의 문제에만 한정시키는 것이야말로 계급 의식을 나르시시즘으로 끌어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