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를 위한 정치
* 한참 양아치일 때 우리한테 딱 하나 선생이 있었다. 미군 기지가 자리 잡고 있는 지방 중소도시에 항상 딱 떨어지는 수트를 입고 멋지게 차려입고 다니는 중년의 물리 선생. 내가 자퇴하고 사고치고 싸돌아다닐 때, 나한테 이십만원을 주고 어줍잖은 충고 한마디 안하던 선생. 나한테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우리 패거리들한테 공평하게 관대하셨댔다. 어느 설날에 삥뜯은 돈으로 뭘 사면 좋을까, 같이 놀던 여자애들한테 물어 물어 난생 처음 커프스 단추라는 걸 사들고, 선생 집으로 가는데 전날 술처먹고 나랑 개잡놈처럼 싸웠던 개잡놈이 정종 같은 걸 이쁘게 싸들고 선생 집으로 올라가고 있더랬다.
대가리는 빨갛게 염색을 하고, 귀걸이 하고, 고새를 못참고 또 어느 놈하고 싸웠는지 왼손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가봤자, 인사나 꿈벅하고 사모님한테 주스 한잔 얻어먹고 내려오는 게 다였다. 그 선생한테 찾아가뵌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선생이나, 그 선생 비슷한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개잡놈 생양아치라도 설날 정종을 사서 인사드리러 가는 그 자리에 그 선생 말고 다른 것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무리 개잡놈 생양아치라도 노동조합원이었으면 좋겠고, 아무리 인격이 진창 하수구라도 자기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사하러 다니는 날들이 설날 말고, 노동절이었으면 좋겠고....내가 정치에 대해서 생각할 때 떠오르는 장면은 저 대가리를 빨갛게 물들인 어느 생양아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