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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가치론에서 한계효용으로 ㅋ

* 작업 할때 내가 안전모를 쓰는 이유는, 떨어져 내리는 자재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곤두박칠 치게될 내 머리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강박적으로 올라가는 건물들과 공정을, 날뛰는 내 머릿속의 상상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나는 쉽게 진정되지 않는 혼돈이고, 안전모는 건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혼돈 위에 덮어 놓은 뚜껑이다. 그러므로, 내가 매일 받아가는 수당은 그 뚜껑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한 것이지, 내 노동의 댓가가 아니다. 그 뚜껑의 비용은 기업,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사회적 비용과 내 팔다리를 혼돈으로부터 분리해내 예측가능한 공정의 일부로 만들기 위한 도구적 합리의 댓가를 합한 것이다.    노동의 댓가라든가, 교환 가치라는 환상은 이와 같은 합리, 윤리의 이름이다. 글쎄, 나는 합리의 가장 극단적인 현상이 윤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윤리는 또 본질적으로 강박적이다. 합리는 왜 자신의 누빔점을 은폐하는 데 몰두하게 될까? 저 안전모와 같은 누빔점들이야말로, 합리라는 환상의 출발점이고, 풍요로운 서식지다. * 사랑을 폭력으로부터 더 이상 구별해낼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사랑과 폭력의 경계를 무너뜨릴 때까지 전진한다. 무엇이든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는, 무지막지한 순간이 나를 덮친다. 사랑은 국경도, 인종도, 경계도 없다는 말은 실은 이렇게나 잔인한 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다. 폭력으로 전이되는 혁명이 그러하다. '아이엠러브'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 폭력은 종말론적 결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