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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예수...

* 예수의 목숨을 원한 것은 빌라도가 아니라, 군중들이었다. 그 사실을 잊으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그들의 '선처'를 요청한 사실이 망각된다. 십자가가 정치범들을 처형하던 방식이라는 사실에 매달려 예수를 '정치범'으로 한정하면, 아주 아주 과학적으로 생각해도 역사적 예수가, 정치적 예수에 의해 왜곡되는 일이 벌어진다.   예수를 크던 작던 어떤 범주를 통해 설명하는 방식은 일종의 소거법일텐데, 소거법을 하려면 정치적 열정이나, 영성이 아니라, 존재의 불안을 댓가로 한 전적인 '의심' 이외에 방법이 없다. 바르트처럼 초월론으로의 복귀를 통한 변증신학이 있는가, 하면 폴틸리히 같은 이들의 고통스러운 의심과 불안에 철저한 변증신학이 있었다. B급 좌파 아저씨는 .......   실존적으로 보면, 이 의심의 철저를 통한 신앙의 길은 소거법의 길이었지만 동시에 매우 고통스러운 길이었다. 야스퍼스가 그랬고, 키에르케고르가 그랬고, 틸리히가 조직신학을 만들어낸 길 또한 그랬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라는 개념은 엄청난 적들을 만들어냈고......   예수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적극적이기 전에, 철저한 의심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일이다. 정치적 입장이나, 윤리를 신앙에 적용시키는 일은 열정을 의심으로 전환시키기를 요구한다. 좌파가 예수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좌파가 예수를 철저하게 의심하는 일 이외에 다른 방법일 수 없다. 그 철저한 의심을 통하지 않고는 좌파는 어떤 영성에도 도달할 수 없다. 없어야 옳다. 예수를 정치적으로 해석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이야말로 빌라도가 예수를 보는 시각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예전에 나랑 같이 일하던 어떤 아저씨가 예수는 미국 사람 아니냐, 고 했던 적이 있는데, 하하하 차라리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이야기냐. 좌파는 예수가 왜 어떻게 미국 사람이 아닌지를 말해줘야지, 예수는 유대인이라고 대답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