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선언
* 깃발은 드높고, 고결하고, 우리의 이상, 꿈을 선포하는 것 같지만, 깃발은 나무에 걸어놓은 우리들의 내장이다. 깃발은 우리가 곧 죽을 존재들이라는 이야기이다. 깃발은 꿈의 선포가 아니라, 죽음에 맞서는 우리들의 태도 그것이다. 깃발은 가장 먼저 썩는 우리, 고기의 부패를 막기 위해, 제일 먼저 꺼내 걸어놓은 내장. 만일 깃발이 숭고하다면, 그것은 가장 먼저 부패하고, 냄새를 피우는 내장을 우리가 꺼내 그곳에 널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부패할 것임을 인정하고, 죽을 목숨들임을 받아들이며, 또 한편 우리의 내장을 거기에 걸어놓아, 그 사실을 상기시키고, 선포한다.......
* 임주연 - 비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