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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렐라 오프닝-제인 폰다

새벽 두 시의 글쓰기

* 대략 열두시 전에 시작한 운동이 끝나고, 땀범벅이 된 몸으로 우유마시고, 담배 하나 피우고, 샤워 때리고 나면 이 시간이 된다. 새벽 두시. 비좁은 베란다에서 내다보면 동네가 다 지쳐서 조용하다. 지나치게 부지런한 하루였다.   * 서정주는 '가난은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말은 할 수가 없다. 서정주의 저 말은 나에게 거의 금지된 문장에 가깝다. 금지는 언제나 갈등이 존재했던 자리라는 점에서 저 말은 나한테 갈등으로 되돌아 가게 만든다. 나한테 가난은 남루 이상이다. 부정적인 의미든, 긍정적인 의미든....서정주의 저 문장은 욕망 그 자체를 부인하는 도착이라고 생각한다. 도착이라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예술은 증상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증상을 산다. 서정주의 저 말은 시적인 전문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 나갔나...    예술에 있어서 지평, 혹은 비전이라는 말은 그래서 금지와 욕망이 만드는 미학적 양심과 관련된다. 미학적 양심은 금지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주체가 만들어내는 지평, 비전, 벡터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예술에 있어서 지평이나 비전이, 초월적인 타자, 초월적인 가치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건 그냥 예술가들의 자위행위다. 만일 '가난이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신이 있다면, 그것을 쏘아 넘어뜨려야 한다는 것이 내 미학적 양심의 요지다.   * 낭만주의의 전제는, 양식을 거부하고 개인의 내면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이 곧 내면에 밀착해 있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더 말하면 양식이 존재하는 이전의 형식주의 시대에는 '내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낭만주의는 내면을 외재화하면서, 즉 내면을 주체로부터 소외시키면서 발생한 것이다. 낭만주의가 중앙집권국가의 탄생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국가가 각 개인들을 개별적으로 호명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탈주술화시켰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문학에서 등장하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