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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소외 / 계급의식이라는 환상 - 한밤중 수정- 두번째

* 원래 소외는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혹은 근대적 주체가 태어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도 하지만.....주체는 기투된 존재인 이상 주어진 질서, 즉 타자의 장에서 구성되고 정의될 수밖에 없다. 또 그와 같은 소외의 과정 없이는 어떠한 자기 확인의 절차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의 물화와 상품의 물신화는 역사적으로는 근대화의 과정으로 옮아가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인간의 사회화가 진행되는 보편적인 과정으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도 하다. 인간은 사회적 질서 안에서 자신의 전존재와 항상 조우하면서 살 수 없다. 그가 사회적으로 조우하기 위해서는 존재가 결여된 주체로써, 소외의 절차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질서에 복무하고, 갈등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물론 들뢰즈는 저 결여를, 존재를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없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기 위한 장치 말이다. 들뢰즈 공부는 모자라서 여기까지..)    그러니까 소외는 존재론적 의미에서 주체가 타자의 질서에 소속되기 위한 절차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자아 실현'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존재의 실현'이 될 수 없다는 소외의 차원과, 보편적 사회화를 표현하는 적확한 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결정적으로 소외는 주체가 소외를 통해 만나는 질서 너머의 무엇과 조우하기 위한 대책없는 열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외의 과정, 존재에서 자아로의 전환 과정은 비자발적 절차, 혹은 언어적 질서에 의해 강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이와 같은 '강제'가 결핍되거나, 훼손되면 당연히 주체는 '비자발적 소외'의 과정 대신 '자발적 소외'의 절차를 불러들이게 된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바로 이와 같은 비자발적 소외, 언어적 질서로의 편입을 위한 강제의 과정이다. 어머니로부터의 분리, 그리고 금지를 통해 '주체'로부터의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