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운동사 리뷰라고 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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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국을 읽다가 나는 내 머리가 얼마나 나쁘고 문학을 얼마나 잘 모르는지 깨달았다. 알튀세르와 라캉, 벤야민을 읽으면 나의 나쁘고 못된 머리와 문학에 대한 무지의 수위가 낮아질 것 같아서 이들을 먼저 읽으려고 했는데, 결국엔 안티조선운동사를 가장 먼저 읽었다. 그 이유는 '알튀세르와 라캉'이라는 책의 번역 수준이 아무래도 개똥 같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고, 벤야민의 책들은 아주 긴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안티조선운동사를 집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이 책의 저자인 한윤형씨가 신문지상과 블로그를 통해 보여주는 일련의 문제의식들이 매우 나의 흥미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의식이 무엇이냐면 한 마디로 공공성과 당파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2.  http://yhhan.tistory.com/trackback/1299 한윤형씨가 블로그에 올린 '정치 평론에서의 초월적 논증'이란 글이다.  글의 내용을 짚어보자.


"최장집(+진보신당) : 한국에 복지국가가 오지 않는 이유는 노조조직률이 10%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조직률이 높아지지 않으면 복지국가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복지국가 담론에 파묻히기 전에 노조조직률 확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상이 : 노조조직률이 10%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국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떠한 조직의 강화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조조직률 문제를 따지기 전에 일단 복지정책 프로세스를 갖춘 정당이 집권하여 복지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 상반된 인과관계 속에서도, "B가 불가능하니 A가 답"이란 초월적 논증이 횡행하지 않는가? - 한윤형"



한윤형씨가 초월적 논증이라고 부르거나 혹은 아래와 같은 글에서 실천적 영역에 있어 심리학의 문제라고 호명하기도 하는 어떤 것은 과연 무엇일까?


" 사실 두 사람의 논리는 둘 중 하나가 그른 것이 아니라, 모두 옳다. 현실세계의 인과관계라는 것이 한쪽이 원인이고 한쪽이 결과인 단선적인 관계를 맺기 보다 인과의 연쇄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박노자는 "왜 가난한 사람들이 이명박을 지지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 "자영업자 비율이 많기 때문."이란 대답을 던졌다.(정확히 말하자면 하나의 가설이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계급투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자영업자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라는 원인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한번 그 원인에 대해, "그렇다면 한국에 유난히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어떻게 될까?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하면 답은 간단하다. "한국에 자영업자 비율이 쉽게 증가하는 이유는, 노동계급이 강고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원인판단이 나온다. 결국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두 마리의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듯 엉켜 있는 것이다. ...(중략)

초월적 논증은 우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실천'을 요구받을 때 나올 수 있는 인간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과학적인 세계인식'은 아닐지라도, '인간에게 필요한 세계인식'일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실천의 영역에서 초월적 논증이 소거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논리학의 영역이 아니라 심리학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섬세한 정치평론에 있어, 초월적 논증만이 난무하는 것이 유일한 길인가 하는 의구심은 든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민주당을 개혁하는 방법과 진보정당을 키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 중 무엇이 바른 길인지는 정치학자가 대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데, 실천이 아니라 평론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솔직하게 무력함을 고백하는 태도가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정치평론이 민주주의 국가의 일인 이상, "똑똑한 나-정치평론가가 길을 제시해 주겠노라."는 자세도 (가끔은) 필요하겠지만, "문제가 이러이러하니 같이 고민을 해서 길을 찾아봅시다."라고 사태를 밝히는 것이 문사의 임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한윤형 "



그 답은 간단하다. 한윤형씨가 초월적 논증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우리는 손쉽게 '당파성'이라고 부를 수 있고, 또 그렇게 불러온 것이 아닐까. 당파성이 무엇인데? 정치적 편향이나 입장? 그것일까? 물론 그렇다. 그렇지만, 그것은 심리학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 당파성을 초월적, 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좀 고민해봐야 할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주체에게 있어 당파성은 '그....그거슨 진리!' 라는 것이다. 타협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과학적 사고 안에서는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증명가능하고, 근거가 존재한다 해도 언제나 의견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초월적 논증이 아무리 '실천의 영역에서'라고 할지라도  '심리학'의 문제라고 말한 부분은 사소하지만 오류거나, 과소평가다. 심리학은 어디까지나 과학의 영역이니까...) 그렇다면, 그의 말대로 정치평론 영역에 있어 초월적 논증 혹은 당파성은 답없는 평행선의 논리를 만들어낼 뿐일까. 요컨대 그의 책 '안티조선운동사'에서 나는 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페이지마다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또 그 질문들이 안티조선운동의 역사를 그와 함께 살펴봄에 있어 나를 몰입하게 만든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3.  저 위에 한윤형씨가 예로 든 최장집 아저씨랑 이상이씨의 의견을 살펴보자. 최장집 아저씨는 노조조직률 문제에 대한 숙고 없는 복지국가 담론은 불가능하고, 이상이 아저씨는 낮은 노조조직률 문제 이전에 국가가 먼저 복지 정책을 펼치는 것이 우선 순위라고 말한다. 이 두 아저씨의 의견이 둘 다 '그...그거슨 진리'라고 외치는 타협할 수 없는 당파성의 문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이 두 아저씨가 동시에 저지르고 있는 초월적 논증을 깨부술 수 있는 방법은 두 아저씨가 '문제가 이러이러하니 같이 고민해 봅시다' 하고 테이블에 오순도순 앉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박터지게 싸우더라도 복지국가-노조조직률의 해괴한 혹은 당파적일 수 밖에 없는 의제가 아니라, 보다 현실에 접근한 의제로, 그 문제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무상복지라고 해도 생활보호대상자를 구제하는 것과 같은 '사후적 복지'냐, 무상급식과 같은 '제도적-구조적 복지'냐의 차이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사실 최근의 복지 논쟁을 대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태도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복지 논쟁에 노조조직률 문제를 언급한다거나, 복지 논쟁 자체가 사후적이며,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사회적 분배의 문제를 오히려 은폐시킨다는 소리들 역시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일종의 '방백'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의제 설정 기능이 완전히 망가진 사회에서 살다보니, 또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진보적 당파성을 가진 주체들이 구멍난 공공성을 보충하고, 대신해 오게 되다보니, 진보적 인사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곧 공공성의 문제라고 착각하기 시작한 듯 싶다. (사실 나는 최장집 아저씨 같은 이들이 공공성의 문제에 가장 민감해야 한다고 믿는데, 그는 공공성의 문제 앞에서 때로 엄하게 좌로 당파적이고, 당파적이어도 무방할 때 때로 공공성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또 어떨 때 그는 정당 정치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보나파르티즘을 관대하게 요청하기도 한다.....걍 나의 인상 비평이다.)좌우를 막론하고 한 마디로 공공성이 뭔지도 까먹은 사회가 된거다. 물론, 복지 문제 이전에 노동조합, 노동자 등등 중요한 문제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공공성을 복구하지 않고 당파성을 유통시키는 방법은 1. 무장 혁명 2. 테러 3. 운동 4. 공부 ....머 이 정도 밖에는 없지 않을까?


  유물론자로써 엄숙하게 선언하나니, 공공성은 당파성보다 먼저 존재하는 '선재성'을 가진 현실이다. 당파성은 저 공공성을 기반으로 돌출하거나(좌파), 그 뒤로 숨거나 강화하거나(우파), 그것의 허구를 폭로하거나 무화시키는(극우, 극좌) 머 이 정도 역할에 한정되거나 좌표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좌파라고 해도 공공성이 그대와 이미 한 몸이라는 착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특히 87년 체제는 공공성을 말살하는 체제로 진화해온 것이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닐까. 87년 체제라는 용어가 진보/보수라는 말로 유통되는 현재의 이분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라는 전제 하에서 진보도, 보수도 공공성을 사막화시켜 온 데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87년 체제는 그 이후의 정치 주체들에게는 진보/보수로 상징되기에 과분한, 사막 그 자체다. 아니, 사막 위에서 당파를 나눈들 그것은 질량이 없는 추상적 좌표 이상의 것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등장하게 될!!  새로운 정치 주체들의 임무는 유토피아를 새롭게 꿈꾸기 전에 일단 저 사막들이 만들어낸 신기루를 걷어내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략 30분쯤 글을 썼는데, 아직도 안티조선운동사의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나는 절망스럽고, 담배를 두 대나 피웠는데도, 아직 진중권, 노무현 아저씨 이야기는 커녕, 조선일보 이야기도 나오지 않아서 당황스럽다. 그래도 이 글의 정체성은 원래 안티조선운동사 리뷰였다. 안티조선운동사가 의미 있는 저작인 이유는 저 사막들이 만들어낸 신기루를 걷어내는 작업의 현장 버전이 그곳에 성실하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티조선운동은 자유주의자부터 좌파까지, 박정희빠부터 노빠까지 당파를 떠나 공공성을 되살리고자 하는 운동이었으며 각자 당파성을 추인받고자 요구하는 순간부터 마침내 좌초된 운동이었다. 그러니까 안티조선운동의 실패는 노무현 아저씨의 우편향 때문이 아니라, 공공성이 확보되기 이전에 당파성이 자신을 추인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공공성과 관련된 사회적 의제가 가장 많이 유통되는 곳은 언론이고, 대한민국의 공공성을 사막화시키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도 그래서 언론이다......비록 안티조선운동이 그 당시 어떤 아저씨들에게는 당파적-정략적 결합의 산물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정치 주체들에게 공공성에 대한 문제 의식을 심어주고,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언론의 역할을 환기시켜 주는 데에는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이 책을 써내려간 저자의 서술 방식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데, 안티조선운동사를 기술하면서 안티조선운동이 국면에 따라 어떻게 작동했는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었는지를 자세하게 기술했다는 점이다. 지정학적, 혹은 구조적 관점에서 당파와 개인과 사건, 운동을 위치짓는다는 것은 한윤형씨가 이 책 뿐 아니라, 평소 써내려가는 글쓰기의 방식과도 맞닿아 있기도 하고 또 그런 방식이야말로 공공성-당파성의 문제를 해부하는 데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


* 설국을 다 읽었다. 흠 맵핵을 쓰는 스타크 유저를 상대할 때에는 저그를 선택해 끊임없이 정찰하고, 늘 숫자상 병력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댓글

  1. 결국엔
    안티 설국?
    ㅎㅎ

    암튼 이 글 읽는데 마지막 문장까지
    무슨 말인지 단어 하나 하나 낯설고 너무
    이런 분야의 이야기들을 등한시 했나봅니다.
    게다가 맵핵은 뭘까..
    정말 독해력이 너무 나빠졌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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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맵핵이 뭐냐면요. 제가 온라인으로 상대방과 1대1로 전략 시뮬레이션...그러니까 전쟁 지휘관이 되어서 전쟁을 하는 거죠. 근데, 내가 정찰을 계속 하지 않는 이상 상대가 무얼하는지 모르는 게 정상인데요, 맵핵은 그런 게 다 보이는 거에요. 그니까 상대는 내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어떤 병사들을 만드는지, 어디에다가 새롭게 진지를 구축하는지 알게 되니까....제가 엄청 불리하죠.
    근데 이게 맵핵이 너무 많이 유통되어서 거의 다 이걸 켜고 하는데요, 저도 옛날에는 그랬다가 이제는 맵핵을 안켜고 합니다. 저의 자부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머리가 나쁘고 문학을 잘 모르는'이라는 말은 안티설국은 아니구요, 풀네임이에요. 영어로 치면 퍼스트 네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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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금 카페에 앉아 찬찬히 읽으니 조금 이해가 가네요...

    독일오빠의 말에 따르면, 두명만 모여도 조직을 만든다고 합니다.ㅎ
    그리고 그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 두 명만 모여도 또 조직을 만든다고 합니다.
    공공성이란 개념조차 아예 사장될 정도로 닥치고 조직만드는데 난리랍니다 ㅎ
    당연히 사회적으론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이 걸리겠지만...공공과 사사의 구분이 없을 정도...하긴 게슈타포가 괜히 독일이 아닌거죠 ㅎ

    뭐, 그래도 저 또한 징그러울 정도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는 생각인데
    일단 저는 익명의 글쓰기에 자부심을 가진다능 ㅎㅎ
    자영업자가 거의 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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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엥 댓글 잘려버렸다
    스마트폰 댓글 쓰기 대략 난감 ㅡㅡ;;;;
    자영업자가 거의 드문 독일이라 가능하다, 뭐 그런 이야기였는데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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