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이라는 거대한 바다

* 이곳은 거대한 바다다. 나는 그물을 던져 고기를 낚아 올리며 볕에 그을릴 수도 있고, 흰 배를 뒤집는 거대한 고래가 될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천재에 부딪히면서 느끼는 쾌감 가운데 하나는 비좁은 바늘 구멍을 통과해 망망대해와 조우하는 자유다. 자유란 아주 촘촘한 것일까? 머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L'er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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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클래식 바이크와 할배들이 마구 나오는 자전거 비디오다. 나의 지니의 출생의 비밀을 마구 조사해보니, 나의 토마지니는 커스텀 바이크였던 모양이다. 머 연식은 오래된 게 아니지만 클래식 바이크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암튼 아름다운 자전거들이 마구마구 등장한다.

조호성이냐 칸첼라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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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륜계의 대마왕에서 다시 올림픽으로. 조호성이다. 경륜장에서 그가 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뭔가....말 같았다. 지금은 예전 몸에서 십키로 넘게 감량을 했다고 한다. 음...난 근육질이 좋긴 하다. 단거리 스프린트. 음.   * 노란 저지가 칸첼라라다. 흠 양복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완전 말랐다. 전형적인 장거리 선수의 몸이다. 흠....자전거를 그냥 꼐속꼐속꼐속 타면 저렇게 될 거 같다. 음. 조호성이냐 칸첼라라냐. 조호성 선수는 근육을 키우는 훈련도 많이 하는 듯. 흠...

이상한 나라의 낫꿀

* 낫쿨, 낫꿀 나는 하나도 안쿨하고, 하나도 안달콤하다. * 세상일이란 것이 참 알 수 없다고 하는데 공부도 다시 한번 그렇다. 회사에 하도 사건 사고가 많이 터져서 밤낮 없이 5분 대기 상태다. 머 이런 세기말, 아니 회사말이라니....나는 라캉을 거쳐 헤겔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 새벽 1시에 토마지니를 짊어지고 집을 나와서 압구정 나들목까지 달려갔다 왔다. 안장통은 없어졌다. 이제 아주 약간 사이클이 내 몸에 밀착해온다. 속도를 낼 수록 몸에 붙는다. 속도를 낼수록 시간이 느리게 간다.  어제는, 아니 일주일 간 내가 읽은 문장은 딱 서너 줄 정도 밖에 안된다. - 그런데 타자에 대한 존재란 곧 구별이므로 힘은 그 자신과 더불어 구별을 갖추고 있는 것이 된다. 그뿐 아니라 힘이 참다운 힘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유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 구별의 실체를 이루는 것으로 정립되어야만 한다. - 헤겔 '정신현상학' - 여기서 형식상 대립관계에 있는 대자존재와 대타존재는 상호간에 유발하는 것과 유발당하는 것의, 즉 능동과 수동의 대립관계를 나타내며, 더 나아가 대타존재와 대자존자, 매체와 일자의 경우는 각기 전자가 수동적이고 후자는 능동적이다. - 헤겔 '정신현상학' 임석진 주 - 대자존재, 대타존재의 구분은 물론 훨씬 더 세밀해졌다. 능동성과 수동성이 더 세밀해진 것처럼 말이다.

케인즈, 슘페터, 경제학...

* 재밌다. 수학 공식 나오면 머리 아프다. 근데, 이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학이 가장 재밌을 때는 그것이 어떤 환타지를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뜻언뜻 비춰질 때다. 그럴 때 나는 몹시 땡긴다. 이를테면 케인즈가 가진 '리스크'에 대한 이야기나, 슘페터가 '혁신'-신결합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은 합리주의가 환타지로써 현실을 어떻게 제어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문자 광고

* 지금은 술을 먹을 수가 없지만, 일 때문에 이런저런 술자리에 끌려다녔던 일들이 꽤 많았다. 덕분에 온갖 술집의 매니저들이 보내주는 문자가 많다. 놀러 오라는 이야기는 잘 없고, 강호동이니, 김제동이니 하는 사람들이 방송에서 하기 좋아하는 명언류가 그 문자의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그것 참 귀찮고, 하나마나한 소리들 같고 그랬는데 요즘은 가끔 그 하나마나한 소리들이 정답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 역시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말이다. 

자전거 / 알튀세르 / 만차 / 동전

* 토마지니를 입양한지 3일째다. 일요일날도 타고 월요일도 타고, 일요일에는 당연하다는 안장통은 없고 허벅지만 쑤셨는데, 어제는 안장통도 있고 허리도 아프고, 엄지와 검지 사이도 아프고 팔도 좀 아프고.....친구 말은 그렇게 다 아픈 것이 자세가 만들어지는 올바른 과정이라는 거다. 나의 토마지니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아직은 길들지 않아서 좀 불안정하다. * 나는 알튀세르 읽기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라캉을 읽다가 내가 왜 이십대에 헤겔을 읽지 않았는지 처음으로 후회를 했더랬다. 헤겔을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발생한 것이다. 난감하지 머. 아무튼 헤겔이 나를 자꾸 부른다. 알았다구요!!!....알튀세르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문장 문장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압도적인 강박증자의 진술을 대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주 사람을 녹초를 만드는 점이 있다. * 만차 滿車, 아름다운 말이지 뭐냐. 나한테는 그런 종류의 언어 감각이 있다. 이해나 해명의 차원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 아마도 영등포 타임스퀘어 같은데, 집창촌에서 일하는 언니들이 동전과 가방을 바꾸는 방식으로 영업 방해도 하고 그랬나부다....시간을 거슬러 그것이 아마 2001년인가, 2002년인가 쯤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만 해도 영화일에 미쳐 있던 친구 하나가 영등포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 안에다 옥탑방을 구한 적이 있었다. 너무 보증금이 쌌던 것이다. 나는 그 집에 놀러가서 청소를 도와주고 이 보증금만은 아무튼 끝까지 가지고 있어라, 충고를 했는데....몇 달을 못참고 그 보증금마져 빼서 단편 영화를 찍어버렸던.....에라이....그 친구는 며칠 전에 공무원 시험을 봤다...  암튼 나는 개인적으로 그 옥탑이 참 좋았다. 옆 공터에 영등포 거친 고딩들이 몰려와 아침에 쌈질하던 그 놈이 학교 파하고 저녁에 또 쌈을 하고, 가게에 온 언 놈이 일하는 여자랑 돈 몇 푼 깍다가 멱살을 잡...

일상 생태계

* 이를테면 내가 호랑이라고 치자. 아침에 일어나 온수를 틀고 담배를 하나 꺼낸다. 숲을 지나서 변기에 볼 일을 보고, 거울에 스스로를 한번 비춰보고, 어이, 푸른 물개들이 껴안고 있는 면도기와 칫솔을 건네 받는다. 아직 물이 차갑다. 호랑이풀로 만든 치약이랑, 유리창을 닦는 클리너를 혼동한다. 비가 내리니까 오늘은 좀 일찍 나가는 편이 좋겠다. * 같이 사시는 분이 요즘 우울증을 앓고 있다. 지난 한 해 스스로를 굉장히 몰아붙였던 것 같은데, 탈이 난 모양이다. 물끄러미.

방어적 혁명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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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그게 뭐냐면 혁명이 일어났으면 하지만, 그냥 혁명이 일어났을 때 숙청을 당한다거나,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헤헤헤

안티 풋볼

* 레알이랑 바르샤랑 축구를 하는데, 이건.... 뭐 흔히 레알의 축구를 안티풋볼이라고 한다. 그 화려한 라인업으로 맨날 안티풋볼을 하는 건 아니고, 바르샤에 대항할 때만 그렇다. 아무튼 축구를 잘 하자고 경쟁하면, 맨날 바르샤한테 깨지니까, 차라리 축구가 작동되지 않게 하자는 거다. 몸싸움과 수비 집중, 미드필드 라인을 후퇴시켜서 공격의 최전방이 아닌, 수비의 최전방으로 삼는 축구. 머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아부지 때문인데, 아마도 내가 본 선거 가운데 아마도 아부지가 (이렇게 격렬하게)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서다.  여기에는 길고 긴 스토리가 있는 것인데...... 먼 옛날 1.4 후퇴 때 쫓겨 내려온 아버지에게 정치란 생명을 담보한 전쟁의 연장선상이랄까. 김동춘 아저씨가 전쟁과 사회 서문에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 정치의 연장이라는 진술을 빌려왔지만, 결국 책의 내용은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비롯된 외상적 강박에 좌우되는 정치를 해명(?)해 주었듯이, 아버지 세대의 정치 역시 언제든지 폭력과 전쟁, 더 좁게는 갈등으로 전환될 수 있는 정치적 뇌관을 제거하는 데 바쳐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이 의존하는, 정치는 화해의 장이라는 무기력해 보이는 수사는, 실은 아주 강박적이고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언술인 셈이다.  안티풋볼이 프로 축구의 존재 이유 자체를 위협하면서까지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내 아버지의 정치관은 근본적으로 '반정치'의 형태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아니, 더 극단적으로 '반정치'일 때만 정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아버지에게 반한나라당이라는 구호는 저항적이라기보다, '반정치적'인 무엇일 것이다. 이건 민주 대 반민주, 머 이런 구분과도 또 다른 것일텐데.....

생태계

* 그런데, 어떤 생태주의는 자본주의와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본주의의 생태계가 가진 배타성을 그대로 두고, 그 배타성에 개입하기보다 자신의 순환성을 완성하면 자본주의도 저절로 변화하리라고 믿는 것이다. 생태주의랑은 상관없지만 먼 옛날 이 은하계에는 마르틴 부버라는 분이 살고 계셨는데, 암튼 이분이 생각한 유토피아 사회주의, 즉 사회주의적 이상은 완전 조합주의였다. 그는 생산과 소비를 모두 조합의 연대를 통해 해결하면 시장이 필요없거나, 혹은 시장과 공존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알튀세르는 사회주의 따위 상품 관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공산주의로 가기 위한 건널목이며, 더 나아가 똥이라고 그러셨지만, 암튼 부버 아저씨는 자신의 완전 조합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이스라엘에서도 발견하셨는데, 공동 농장 같은 모델이 그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면...머 극우파들이 제공하는 국가적 배려에 안주하게 되었다는 거다. 물론, 머 말이야 머 반대 의견을 내셨지만....부버의 '나와 너'는 그의 정치적 이상과 함께 고려할 때 완전히 자족적이고, 예외를 갖기 않는 순환-폐쇄형의 이론적 유토피아상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조합주의나 생태주의가 자본주의적 배타성에 대해 함구하는 순간부터, 혹은 개입하기를 그만두는 순간부터 이와 같은 운동들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이외에 다른 현실적, 대안적 기능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거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죽음과 같은 엄연한 타자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라는 타자를 제외하고 설정한 질서와 구조들은 그래서 또 언제나 자기-폐쇄적인 가치 구조라는 비판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닐까. * 맨날 영성 좌파라 그러는데, 사실 김규항 같은 영성 좌파의 등장은 구멍난 공공성을 우파가 아닌, 좌파들이 메울 수 밖에 없었던 딜레마가 좌파 그 스스로에게로 옮아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파성으로 풀이하면 공공성은 아무리 아무리 양보해도 우파적 헤게모니가 가장 정상적으로 작동하는(해야 할) 영역...

이 놈의 알튀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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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튀세르를 독파? 돌파하기로 마음 먹고 세번째 집어든 놈이 이 책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였는데....아주 진도가 안나간다. 자서전이고 어려운 점도 없고 그런데도 아주 진도가 안나간다. 한 달이 넘었는데 반도 못읽었다. 중간 중간에 다른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책만 읽고 있는데도 그렇다....자전거를 질렀다. * 내일은 빠리에 사는 나의 사촌이 귀국해서 결혼을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빠리에서 공부하는 어떤 분이라고 한다. 사실 뭐 나랑은 별 상관은 없다. 다만.....자전거를 질렀다. * 자전거를 이딸리아에서 구입했는데, 심지어 그분이 그걸 인천공항에 들고 오셨다. 이번 주가 부활절 주간이라서 배송 업체들이 다 논다고 판매하시는 아저씨가 국내에 들어오는 길에 들고 오셨다. 나에게 미친듯이 자전거 뽐뿌질을 한, 망원역 사는 친구가 그걸 받아가지고 왔다. 음...그래서 나는 오늘 알튀세르 자서전을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읽을거라는 이야기. * 나의 토마지니는 이렇다.

계급의식이라는 환상

* 당파성은 계급 이해에 기반한 호명이다. 그 호명을 통해 당파성에 입각한 주체가 태어나는 것이고, 주체는 자기가 소속된 그 호명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이겠지.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계급 이해가 당파성을 가진 주체를 모조리 해명할 수는 없다. 당파성 자체가 수많은 호명으로 구성된 복잡성과 호명을 넘어서는 과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계급 이해와 당파성 간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므로 다시 유물론자는 이와 같은 간극을 좁히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지향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될 것이고, 이것이 정치적 주체가 탄생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꼬뮤니스트는 계급이해의 해명과 계급투쟁의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코뮌을 지향하는 사람이지, 계급의식의 동어반복과 자기 확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꼬뮤니스트라는 거울상에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코뮌이 복무하고 지향하는 가치와 미래상이 다른 공동체적 이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확정하는 일이 꼬뮤니스트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유물론은 이와같은 특정한 공동체적 이상이 그것의 물질적 기반과 지금 얼마나 가까운지를 해명해야 하고, 그것의 격차를 줄이는 일일 것이다.  계급의식이 계급이해로부터 점점 더 괴리되어 마침내 독립적인 자기 규정의 문제에만 한정시키는 것이야말로 계급 의식을 나르시시즘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유나바머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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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니까 나는 가끔 내가 유나바머가 되어서 건물을 폭파시키는 몽상을 하는데, 음...이를테면 조선일보사를 폭파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럼 아마도 극우파들이 들고 일어나서 우리나라 진보 공동체들을 모조리 다 조질 것이다... 머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럼 도대체 뭘 전략적으로 폭파시켜야 이와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을까...피할 수 없겠지? 그, 그럼 한겨레신문사나 경향신문사를 폭파시켜야 하나?? 아니, 근데 나는 아직도 정태춘의 노래가 좋다...나의 미스테리 가운데 하나....

노출증

* 거울아, 거울아, 동화 속에서 마녀는 거울에게 묻는다. 그러나 백설공주는 거울을 가지지 않는데, 사회적으로 승인된 자아상이란 이처럼 거울을 내면화하거나 은폐한 자아라고 할 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일관된 거울상을 지닌 이들은 더 이상 거울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일관된 거울상이란 결국 사회적으로 승인된 자아 이상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때문에 끊임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자아,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거울상을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자아는 확고한, 승인된 자아 이상을 획득하지 못한 주체의 증거라고 하겠다. 한 마디로 마녀가 거울에게 물어보는 행위는 마녀가 사회적으로 승인받지 못한 자신의 자아를 벌충하고자 하는 강박 때문이다.  그런데, 거울은 이처럼 확정되지 못한 자아를 확인해주는 기능과 동시에 다시 거울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지금의 자아를 유예시켜 주기도 한다. 즉 다시 거울 앞에 설 때까지 나는 지금의 불확정적이고, 승인되지 못한 나를 처벌하지 않고 유예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노출증이 반복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자기 처벌을 유예시키는 쾌락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부터 우리는 외설적이고 노골적이고 비인간적인 어떤 것을 솔직한 것으로, 내면에 성실한 것으로 호명해오고 있는데, 이 같은 사회적 노출증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망가지거나, 깨진 자기 정체성을 유예시킴으로써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차라리 불안을 살아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명선? 아니 생활가능선..

* 그러니까 전두엽을 다친 이후에 나는 죽어도 일곱시간은 넘게 자야 다음날 정상적인, 두통이나 무기력증이 없는 생활이 가능하다. 나의 신경외과 선생님은 전공이 머 아이들인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컴퓨터를 통해 얻는 정보의 99%를 정보가 아니라, 그냥 쓰레기로 취급한다고 한다. 뇌는 인터넷과 같은 매체를 통해서 얻은 정보를 처리할 때 사고 회로가 움직이기보다, 그저 기계적 반사 회로가 반응을 보일 뿐이라는 거다. 특히 게임 중에는 이 같은 현상이 극대화 되어서 이건 뭐 그냥 반사 회로만 미친듯이 돌아간다나....  아마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주로 치료하다 보니 그렇겠지만, 아무튼 뭐 전문가의 말이니 새겨들어야겠다, 생각은 하지만 그의 저 완강한 태도 때문에 나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해서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아무튼 일곱시간 이상 잠을 자면, 나는 좀 공격적인 인간이 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컨디션이 좋을수록 반사회적이야. 흠...경험적 사실인데 나는야 반사회적일 때 일도 잘 하는 것 같다. 흠냐..좀 이상한 인과론이긴 한데 그렇다.

그댄 왠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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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댄 왠지 달라요.

비가 내린다

* 그저께 밤에 목감기 때문에 목이 칼칼하다, 바짝 마른다는 기분으로 잠들어 있었는데, 잠 자고 있는 중간에 비가 내리는 거다. 비가 내리면서 집안의 공기가 일순 부드러워지고, 잠자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더랬다.

4월 5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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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5일은 커트 코베인이 죽은 날이다. 내 십대 후반의 백그라운드 뮤직 같은 너바나. 학교도 안가고 텅 빈 거실에서 LP를 걸어놓고 너바나로 공기를 박박 긁는 날들이 많았다. 이제는 머 무슨 티브이 광고 음악 같은 걸로도 나오지만...으으으...가끔씩 아직도 그의 음악을 찾아서 듣는다. 음, 내가 그를 딱 한번 안좋아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지같은 언플러그드 열풍에 합류해 언플러그드로 콘서트를 열어 가지구, 엠티뷔가 폭발하던 때였다. 난 그때 나의 커트 코베인마져 병신같은 언플러그드 어쩌구에 한 발 담그는 걸 보고 막 화가 났더랬다. 병신같은 언플러그드! 병신같은 언플러그드!! 그치만, 세월이 한참 지나서 그 공연을 다시 찾아서 듣고 있다. All Apologirs ......봄이다...

M.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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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만화 터치에 갑자원 진출을 위한 지역 결승전 날짜가 '1986년 7월 30일'로 나온다. 만화를 보다가 그해 우리나라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뒤적거려보니 음....묘하다. * MOT 2집에 나오는 시니피에, 라는 노래다. 글쎄, 내 고통만큼 너도 고통스러웠으면 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