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애도와 글쓰기

이미지
* 결핍은 욕망의 조건이다. 없는 것, 없어진 것을 벌충하기 위해 욕망은 움직이는데, 그런 점에서 금지는 욕망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의 벌충을 막는 것이다. 금지가 없이 욕망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이와 같은 결핍의 차원을 내재하고 있다. 금지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결핍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것이 욕망의 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 사후적으로 보면 애도는 결국 대상에 고착된 감정들을 떼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애도가 없다면 결국 주체는 대상의 존재 여부에 따라 일관된 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다이어리

이미지
* 어제는 밤에 음...내가 쓴 다이어리를 한번 들춰봤는데, 좋네. 어제는 운동을 하나도 안했다. 팔을 굽혀 펴지도 않고, 싸이클을 데리고 나가지도 않고, 아령을 들지도 않고, 완력기를 접지도 않았다. 아, 사무실에 있는 악력기는 몇 번 했네. 근데 운동을 안하는 하루는 참 평화롭다. * 정치적 적대가 정치공학적 적대로 완전히 수렴될 수 있다는 환상. 그러니까 정치공학과 정치 사이의 차이와 틈을 인식하지 못하는 주체들일수록 환타지로 점철된 계급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그들에게 정치공학과 정치 사이의 낙차를 인정하는 일은 환타지를 깨뜨리는 일이고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환타지를 가능케 하는 물적 조건

이미지
* 부르조아지는 중간계급에게 일종의 환타지를 제공한다. 국가, 민족, 가족 등등의 환타지가 작동할 수 있을 만큼의 물적 조건도 함께 제공한다. 촛불이 외친 '국가'는 '국가'라는 환타지가 작동가능한 최소한의 물적 조건을 돌려달라는 말이다. 물론 피티계급에게는 국물도 없지. 리얼리티가 유독 그곳에 출몰하는 이유가 뭐냐면, 이처럼 환타지가 작동할 만한 최소한의 물적 조건이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라벨

이미지
라벨이다. .............대상a는 실재계의 함의를 획득합니다....어머니는 금지된 대상으로 영원히 현실로부터 추방되어 실재계를 구성합니다. 이를테면 상징계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영원히 상실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상실된 대상을 큰 사물이라고 부릅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대상a를 정의한다면, 대상a는 큰 사물이 현실로부터 떨어져나갈 때, 실재계의 이면에 남긴 파편 또는 나머지입니다. 그래서 대상a에는 상징계와 실재계가 연루되는 것입니다...

ktx가 왜 그러냐고?

* 경비 절감하고, 인원 감축하느라 정비 부분을 다 아웃소싱했거든...아주 선진국형으루다가...이게 선진국으로 가는 길임.

밤눈

이미지
* 그렇다 뭐. 자전거를 미친듯이 탓드니 5키로가 빠졌다가, 안타니까 3킬로가 다시 쪘어.    인생은 참 단순타.

맑스주의를 인간주의의 인력으로부터....

* 맑스주의를 인간주의의 인력으로부터 길항하는 상태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알튀세리안의 윤리이지, 그것을 완전히 도려낼 수 있다는 환타지가 알튀세리안의 덕목은 아니리라. 네가 연애로부터 인간주의를 떼어내고 있다는 믿음은 네 논리의 사후적 일관성이며, 이미 전제된 환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너는 지금 어떤 종류의 근본주의를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 근본주의가 가치의 서열화와 그것을 담보해주는 폭력적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그렇다. 전복이 원래 저 서열화된 가치를 깨부수는 것이라는 뜻에서, 모든 근본주의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이다. 그 일관성은 '관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보수, 반동의 지향이다.  * 진보신당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일년에 십만원 남짓 당비를 낸 것 뿐이다. 내 자전거 가격의 십분의 일 밖에 안되고, 내가 사들인 책값의 백분의 일도 안될 것이다. 굳이 경제주의의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나의 진실과 신념을 완전히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어떤 점에서 윤리적 주체의 자리를 정치적 주체가 탈환해야 한다는 나의 말과 행동들은 그냥 거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아무리 양보해도 그냥 나의 중요한 환타지였을 것이다....... * 범이기주의 : 나는 이기적이지만, 너는 안돼!! .....이건 이기주의의 가장 퇴행적인 형태다. 내가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하되, 당신이 이기적이어도 되고, 혹은 이타적인 존재라고 해도 함께 공존할수 있는 이기주의.....

척후병

* 벙커 바깥을 나가면 바람이 불고 태양이 있다. 나는 나 이외에 아무런 존재를 갖지 않는다. 나중에 벙커로 돌아왔더니 나를 척후병이라고 불렀지만, 거짓말이다. 사후적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벙커 안의 너희는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으리라. 그 경험은 내가 가진 언어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나의 언어는 전혀 새롭게 재구성되었다. 전혀 다른 중력을 산다.

난간

* 그 여자가 난간을 내려온다 난간이 여자를 내 앞으로 데려온다 위험해, 그러나 나는 저녁이 길게 내려놓는 난간으로 그 여자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른다 난간 위에서 쌀을 안치다가 줄넘기, 읽다만 페이지를 넘기다가 프라이팬을 튕기다가, 또 데겠다, 그러지 마 위험해, 난간 밖에 남지 않은 저녁을 구부려 나는 그 여자를 무릎 위에 내려놓는다 계단들을 만들겠다, 배고프지? 커피, 뭐 마실래? 파렴치를 감출 수가 없다, 이러다 놓치고 말지 저녁 위로 순식 간에 미끄러져 지나가는 난간들.....차라리 그 여자를 난간에 못박고 말지, 이러다가....

행복을 주는 사람

이미지
* 이소라가 해바라기 노래를 부르니까 맞어, 원래 이소라는 막 함께 노래 부르는 싱어 였다구...아무튼 해바라기 '행복을 주는 사람'. * 그런데 참 나는 험한 길은 가본 적이 없어라. 왜냐하면 난    로드 레이서니까!!!! 훔하하하하 거친 MTB도 날티나는 BMX도 나한텐 안맞다구..

헤겔이라는 거대한 바다

* 이곳은 거대한 바다다. 나는 그물을 던져 고기를 낚아 올리며 볕에 그을릴 수도 있고, 흰 배를 뒤집는 거대한 고래가 될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천재에 부딪히면서 느끼는 쾌감 가운데 하나는 비좁은 바늘 구멍을 통과해 망망대해와 조우하는 자유다. 자유란 아주 촘촘한 것일까? 머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L'eroica

이미지
* 아름다운 클래식 바이크와 할배들이 마구 나오는 자전거 비디오다. 나의 지니의 출생의 비밀을 마구 조사해보니, 나의 토마지니는 커스텀 바이크였던 모양이다. 머 연식은 오래된 게 아니지만 클래식 바이크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암튼 아름다운 자전거들이 마구마구 등장한다.

조호성이냐 칸첼라라냐

이미지
   * 경륜계의 대마왕에서 다시 올림픽으로. 조호성이다. 경륜장에서 그가 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뭔가....말 같았다. 지금은 예전 몸에서 십키로 넘게 감량을 했다고 한다. 음...난 근육질이 좋긴 하다. 단거리 스프린트. 음.   * 노란 저지가 칸첼라라다. 흠 양복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완전 말랐다. 전형적인 장거리 선수의 몸이다. 흠....자전거를 그냥 꼐속꼐속꼐속 타면 저렇게 될 거 같다. 음. 조호성이냐 칸첼라라냐. 조호성 선수는 근육을 키우는 훈련도 많이 하는 듯. 흠...

이상한 나라의 낫꿀

* 낫쿨, 낫꿀 나는 하나도 안쿨하고, 하나도 안달콤하다. * 세상일이란 것이 참 알 수 없다고 하는데 공부도 다시 한번 그렇다. 회사에 하도 사건 사고가 많이 터져서 밤낮 없이 5분 대기 상태다. 머 이런 세기말, 아니 회사말이라니....나는 라캉을 거쳐 헤겔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 새벽 1시에 토마지니를 짊어지고 집을 나와서 압구정 나들목까지 달려갔다 왔다. 안장통은 없어졌다. 이제 아주 약간 사이클이 내 몸에 밀착해온다. 속도를 낼 수록 몸에 붙는다. 속도를 낼수록 시간이 느리게 간다.  어제는, 아니 일주일 간 내가 읽은 문장은 딱 서너 줄 정도 밖에 안된다. - 그런데 타자에 대한 존재란 곧 구별이므로 힘은 그 자신과 더불어 구별을 갖추고 있는 것이 된다. 그뿐 아니라 힘이 참다운 힘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유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 구별의 실체를 이루는 것으로 정립되어야만 한다. - 헤겔 '정신현상학' - 여기서 형식상 대립관계에 있는 대자존재와 대타존재는 상호간에 유발하는 것과 유발당하는 것의, 즉 능동과 수동의 대립관계를 나타내며, 더 나아가 대타존재와 대자존자, 매체와 일자의 경우는 각기 전자가 수동적이고 후자는 능동적이다. - 헤겔 '정신현상학' 임석진 주 - 대자존재, 대타존재의 구분은 물론 훨씬 더 세밀해졌다. 능동성과 수동성이 더 세밀해진 것처럼 말이다.

케인즈, 슘페터, 경제학...

* 재밌다. 수학 공식 나오면 머리 아프다. 근데, 이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학이 가장 재밌을 때는 그것이 어떤 환타지를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뜻언뜻 비춰질 때다. 그럴 때 나는 몹시 땡긴다. 이를테면 케인즈가 가진 '리스크'에 대한 이야기나, 슘페터가 '혁신'-신결합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은 합리주의가 환타지로써 현실을 어떻게 제어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문자 광고

* 지금은 술을 먹을 수가 없지만, 일 때문에 이런저런 술자리에 끌려다녔던 일들이 꽤 많았다. 덕분에 온갖 술집의 매니저들이 보내주는 문자가 많다. 놀러 오라는 이야기는 잘 없고, 강호동이니, 김제동이니 하는 사람들이 방송에서 하기 좋아하는 명언류가 그 문자의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그것 참 귀찮고, 하나마나한 소리들 같고 그랬는데 요즘은 가끔 그 하나마나한 소리들이 정답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 역시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말이다. 

자전거 / 알튀세르 / 만차 / 동전

* 토마지니를 입양한지 3일째다. 일요일날도 타고 월요일도 타고, 일요일에는 당연하다는 안장통은 없고 허벅지만 쑤셨는데, 어제는 안장통도 있고 허리도 아프고, 엄지와 검지 사이도 아프고 팔도 좀 아프고.....친구 말은 그렇게 다 아픈 것이 자세가 만들어지는 올바른 과정이라는 거다. 나의 토마지니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아직은 길들지 않아서 좀 불안정하다. * 나는 알튀세르 읽기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라캉을 읽다가 내가 왜 이십대에 헤겔을 읽지 않았는지 처음으로 후회를 했더랬다. 헤겔을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발생한 것이다. 난감하지 머. 아무튼 헤겔이 나를 자꾸 부른다. 알았다구요!!!....알튀세르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문장 문장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압도적인 강박증자의 진술을 대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주 사람을 녹초를 만드는 점이 있다. * 만차 滿車, 아름다운 말이지 뭐냐. 나한테는 그런 종류의 언어 감각이 있다. 이해나 해명의 차원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 아마도 영등포 타임스퀘어 같은데, 집창촌에서 일하는 언니들이 동전과 가방을 바꾸는 방식으로 영업 방해도 하고 그랬나부다....시간을 거슬러 그것이 아마 2001년인가, 2002년인가 쯤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만 해도 영화일에 미쳐 있던 친구 하나가 영등포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 안에다 옥탑방을 구한 적이 있었다. 너무 보증금이 쌌던 것이다. 나는 그 집에 놀러가서 청소를 도와주고 이 보증금만은 아무튼 끝까지 가지고 있어라, 충고를 했는데....몇 달을 못참고 그 보증금마져 빼서 단편 영화를 찍어버렸던.....에라이....그 친구는 며칠 전에 공무원 시험을 봤다...  암튼 나는 개인적으로 그 옥탑이 참 좋았다. 옆 공터에 영등포 거친 고딩들이 몰려와 아침에 쌈질하던 그 놈이 학교 파하고 저녁에 또 쌈을 하고, 가게에 온 언 놈이 일하는 여자랑 돈 몇 푼 깍다가 멱살을 잡...

일상 생태계

* 이를테면 내가 호랑이라고 치자. 아침에 일어나 온수를 틀고 담배를 하나 꺼낸다. 숲을 지나서 변기에 볼 일을 보고, 거울에 스스로를 한번 비춰보고, 어이, 푸른 물개들이 껴안고 있는 면도기와 칫솔을 건네 받는다. 아직 물이 차갑다. 호랑이풀로 만든 치약이랑, 유리창을 닦는 클리너를 혼동한다. 비가 내리니까 오늘은 좀 일찍 나가는 편이 좋겠다. * 같이 사시는 분이 요즘 우울증을 앓고 있다. 지난 한 해 스스로를 굉장히 몰아붙였던 것 같은데, 탈이 난 모양이다. 물끄러미.

방어적 혁명주의자

이미지
* 음, 그게 뭐냐면 혁명이 일어났으면 하지만, 그냥 혁명이 일어났을 때 숙청을 당한다거나,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헤헤헤

안티 풋볼

* 레알이랑 바르샤랑 축구를 하는데, 이건.... 뭐 흔히 레알의 축구를 안티풋볼이라고 한다. 그 화려한 라인업으로 맨날 안티풋볼을 하는 건 아니고, 바르샤에 대항할 때만 그렇다. 아무튼 축구를 잘 하자고 경쟁하면, 맨날 바르샤한테 깨지니까, 차라리 축구가 작동되지 않게 하자는 거다. 몸싸움과 수비 집중, 미드필드 라인을 후퇴시켜서 공격의 최전방이 아닌, 수비의 최전방으로 삼는 축구. 머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아부지 때문인데, 아마도 내가 본 선거 가운데 아마도 아부지가 (이렇게 격렬하게)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서다.  여기에는 길고 긴 스토리가 있는 것인데...... 먼 옛날 1.4 후퇴 때 쫓겨 내려온 아버지에게 정치란 생명을 담보한 전쟁의 연장선상이랄까. 김동춘 아저씨가 전쟁과 사회 서문에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 정치의 연장이라는 진술을 빌려왔지만, 결국 책의 내용은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비롯된 외상적 강박에 좌우되는 정치를 해명(?)해 주었듯이, 아버지 세대의 정치 역시 언제든지 폭력과 전쟁, 더 좁게는 갈등으로 전환될 수 있는 정치적 뇌관을 제거하는 데 바쳐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이 의존하는, 정치는 화해의 장이라는 무기력해 보이는 수사는, 실은 아주 강박적이고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언술인 셈이다.  안티풋볼이 프로 축구의 존재 이유 자체를 위협하면서까지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내 아버지의 정치관은 근본적으로 '반정치'의 형태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아니, 더 극단적으로 '반정치'일 때만 정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아버지에게 반한나라당이라는 구호는 저항적이라기보다, '반정치적'인 무엇일 것이다. 이건 민주 대 반민주, 머 이런 구분과도 또 다른 것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