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루덴스는 멸종하지 않아! 않는다규!!

* 언니라는 말은 참 좋다. 아큐라 언니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에 올린 글이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쫌 놀려 먹었는데 ㅋ 암튼 글쟁이 데뷔작인 셈인가. ㅎㅎ

 

 

호모루덴스는 멸종하지 않아

-놀이네트(놀이운동가)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하위징아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은놀이, 놀이라는 바탕 위에 인간의 문명이 세워졌다. 1938년 출판된 <호모루덴스>에 이러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러나 통념상 놀이는 문화의 하위 영역이다. 개인의 삶에서 노동 또는 학업과 휴식 사이에 겨우 존재하며, 재미는 있지만 별다른 목적과 가치가 없는 활동이 바로 놀이다. 통념은 힘이 세며 일정한 진실을 반영한다. 우리는 재미없이 살고 있으며 우리 삶은, 놀이가 그러하듯, 어떤 목적을 위하지 아니한다. 놀이는 매우 자명하며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활동이지만, 아직은 인간의 언어로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복잡한 과정과 원리를 가진 실체다. 놀이는 에브리싱(Everything)인 동시에 낫싱(Nothing)인 그 무엇이며, 일상 속 복잡계이다. 놀이라면 당연히 전래놀이라는 선명한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하면 선명하지 않은 현실과 부합하기 어렵다. 극단의 여러 관점을 동시에 긍정해야 한다.

 

 

 

 

과연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놀지 않는가? 답은 만만치 않다. 놀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우선 놀이는 자유일 수 있다. 놀이의 반대는억압이 된다. 우리 아이들은 오직 공부할 자유만 있어 내전 중인 나라나 극히 빈곤한 나라의 아이들만큼 심각한놀이실조상태다. 놀이를 성인기의 준비로 보는 관점도 있다. ‘어려서 놀며 기른 힘으로세상의 벽과 사회에서 받을 상처를 넘거나 치유하게 된다. 그렇다면 산과 들, 골목에서 뛰노는 것도 놀이요, 공부나 독서도 놀이가 된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아이들은 모두 365 24시간 중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놀이를 한 셈이다. 대신 농경사회, 수렵사회, 산업사회, 후기산업사회 등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시대와 사회가 달라지면 놀이도 달라진다.

 

그렇다고 현재 아이들이 미래를 대비해 잘 놀며 잘 살고 있다고 보는 한국인은 없다. 최근 서울시 초등학교 중 일부가 휴식시간을 10분에서 5분으로 줄였고, 점심시간을 줄여 하교시간을 앞당겼다. 학원에 가든 방과 후 학교에 남든 아이의 학습시간을 하루 30분이라도 더 늘려주어야겠다는갸륵한교장이 그리 많은 것이다. 그 정도는 약과다. 전국의 초등학교가 수학과 영어 교과 시수는 늘리고 체육 교과 시수는 줄인다.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갈 인재들은 체력이 약해도 된다는 깊은 뜻이다. 이 깊고 갸륵한 뜻을 이해 못한 네티즌이 수천, 수백의 댓글로 비난을 퍼부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초등학생들이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데,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는 쪽이 다수인 듯하다. 그러나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돌이켜보면 경쟁교육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 후보들이 얻은 표가 진보 진영보다 훨씬 많았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현실에 영향을 줄 논의를 하려면 이러한 현실을 냉철하게 보아야 한다. 현재 어린이들의 삶이 안쓰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아이들을 위해 약간이라도 성가신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시험을 보면서 더욱 학업에 힘써야 한다고 나서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이들이 정작 세상을 조몰락댄다. 어느 쪽을 향해서든 놀이는 밥이고, ‘놀이밥을 굶다 보면 아이들이 멸종한다고 다그쳐선 곤란하다.

 

우선 효용이 없다. ‘아이들의 멸종’, ‘참극’, ‘전쟁등 묵시론적 언어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주긴커녕 반감만 준다. 당위를 강조하는 말이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없다. 두 번째로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 20대 문화를 보면 과거 어떤 세대보다 유희성이 강하다. 이들 역시 어려서놀이밥을 굶어가며 매일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다면 이들이 보낸멸종된 아이시대와 20대 문화의 유희성은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가? 호모루덴스의 아이들은 결코 멸종하지 않는다. 놀이는 인간의 본질이기에 아이들은 어떻게든 놀이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이 문제일까? 엄밀히 말해서 게임이 약간의 문제를 일으키지만 사람이 망가지기는 쉽지 않다. 놀이는 재미있고 몰입이 가능한 활동이다. 놀이에 우열은 없지만 재미로 따지자면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며 다양한 서사와 음향, 화면으로 몰입도를 높인 전자매체 놀이를 넘어설 옛 놀이는 없다. 게다가 놀이와 사회는 조응한다. 하나의 사회구조는 어떤 특성을 가진 놀이를 낳으며, 사람들의 생활감정과 생활공간에 맞는 놀이가 널리 퍼진다. 전자매체 놀이는 현대사회와 긴밀히 조응한다. 적을 궤멸하든, 공주를 구하든 뭔가 임무가 주어진다. 임무 수행 중 모험을 하면서 역할을 담당한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성과가 누적되면 레벨이 오른다. 레벨이란 노골적인 순위 매기기다. 비교가 이보다 간명해지긴 어렵다. 이러한 게임 구조는 현대인의 삶 구조와 거울상처럼 맞아떨어진다. 개인적으로 안타깝지만 이것이 놀이의 시대성이다.

 

문제는 전자매체 놀이 말고는 옵션이 없는 현실이다. 아이들이 잘 뛰놀지 못하는 현실도 문제다. 그러나 아이들이 뛰놀 수 없게 하는 여러 겹의 구조가 우리 모두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1980년대 초반의 과외 금지를 지금 시행한다면, 대졸자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영역은 바로 수험산업이므로, 당장 굶어야 할 사람이 부지기수다. 현실은 복잡하며 강고하다. 무작정 모여서 재미있게 노는 일이 그냥 일어날 리 없다. 또한 여러 사람이 모여 몸을 움직여 노는 놀이가 다 같지 않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여러 조건을 세팅하는 것이다.

 

그 조건에 다음 내용이 들어갈 것이다. 하나, 어린이 놀이운동을 할 주체, 플레이 리더가 계속 재생산되는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자본제와의 싸움은 20~30년으로 끝나지 않는다. 플레이 리더가 수십, 수백 명이 되면 수백, 수천의 대안이 생길 것이다. , 어떤 놀이가 어째서 아직 대도시 아이들의 일상 속에 살아남았는지 따져야 한다. 현대인에게서 신명과 흥의 원초적 정서를 일으키는 생명력이 넘치는 놀이의 유전자를 찾아야 한다. , 이런 놀이를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함께 나눌지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모델은 이 시대의 평범한 부모들의 욕망을 매혹해야만 작동할 수 있다

댓글

  1. 히키코모리형 오타쿠2010년 5월 11일 PM 9:52

    어익후 명문이군요. 저런 글쟁이가 있었다니...



    광명 스피돔에서 지난주 금욜 오전에 자전거를 좀 탔는데 어찌나 좋던지 가끔 연가를 내고 평일에 잔차타러 다녀야 겠다는 결심까지 하고 있습니...

    어제는 노회찬 대표 개소식 연설 동영상을 보고 조낸 감동받은 상태에서 갑자기 당에서 특별당비 좀 낼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는... 걍 10만을 쾌척해버렸다는... 완주까지 꼭 하겠다는데 아무 핑게거리가 생각이 안나드만요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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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근데 히키코모리...라는 닉넴을 쓰시기에는 문화적 소양이 모자라십니다!!! 에반겔리온, 마크로스, 건담, 에스카플로네, 공각기동대, 패트레이버 등등 머 이런 아주 보편적인 컨텐츠도 다 통과못하셨잖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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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오..^^ 두번째 문단의 줄바꿈은 거의 '시적'이군요. ㅎㅎ

    글은 쓰다보면 확실히 늘구요, 문제는 덕력인데, 패트레이버TV 판 전편, 퍼스트건담, 카우보이비밥 3번 보기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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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쟁가님이 아큐라 언니의 오타쿠 교관으로 나서는 건가요? ㅋㅋㅋ



    언니 죽었다. 오타쿠계의 수색대라 할 만큼 그 빡시다는....쟁가님 휘하로 들어가시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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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히키코모리형 오타쿠2010년 5월 12일 PM 5:41

    @뮤탄트 - 2010/05/12 14:16
    흥 무슨 말씀! 패트레이버는 ova로 보기 한참 전에 망가로 두번봤고 에반겔리온은 tv판, 공각기동대는 만화까지 다 봤음. 그리고 연륜으로 따지면 황금박쥐부터 고전을 두루 섭렵한 언니한테 무슨 소양타령!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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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히키코모리형 오타쿠2010년 5월 12일 PM 5:54

    @쟁가 - 2010/05/13 01:43
    그러게 말입니다. 너무 줄이다 보니..



    패트레이버는 만화판으로 충분했다고 보고요. 카우보이비밥은 보긴 했는데 3번까지 봐야하나요? 퍼스트건담은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 시집은 몇 번씩 보게되는데 영상물은 한 번 본건 잘 안보게 되요. 2번 본 영상물이 아무리 생각해도 5개를 넘지 않고 3번 이상 본 영상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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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히키코모리형 오타쿠2010년 5월 12일 PM 6:00

    @뮤탄트 - 2010/05/13 09:34
    근데 님하는 3번씩 보고 그러나요? 저는 이론서랑 시집은 3번씩도 보고 그러겠는데 소설이나 영상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3번 본 작품이 수호지 딱 하나 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2번도 힘든데 3번씩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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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히키코모리형 오타쿠 - 2010/05/13 10:00
    반복이야말로, 오덕의 길로 들어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지요.



    건담도 보고, 공각기동대도 보고, 패트레이버도 보고...가 아니라, 패트레이버 10번 보면 오덕의 문이 열립니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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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히키코모리/ 2번도 힘들다구요? 님하는 기본자세부터가 불량하지 말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반복,반복, 반복입니다. 그리고 패트레이버는 만화판 따위로 전혀 충분하지 않음. TV판, 첫번째 극장판, 두번째 극장판, 이 삼종세트가 진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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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두 사람이 하나를 놓고 다구리하는 모습이 그닥 알홈답지 아니하군요 -,.-



    반복의 중요성이 저절로 뼈에 새겨지는 듯 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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