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차지한 세계
* 방 안에, 몸 안에, 주머니 속에, 머릿 속에 코끼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때까지 코끼리는 만질 수는 있지만,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에 지나지 않습니다. 코끼리를 어떻게 격리할 것인가, 혹은 코끼리의 생태계와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 혹은 코끼리를 어디에 감춰둘 것인가, 하고 머리를 굴려봅니다. 코끼리는 불어나지 않지만, 코끼리에 대한 질문들만 불어나 둑을 넘습니다. 결국 우리는 가난하게도, 그 질문들을 막는 데 급급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 코끼리가 사라지고 코끼리에 대한 질문만 남아 있는 세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은 코끼리를 살해하고, 간신히 그 질문만 떠도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코끼리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장님에, 거짓말쟁이입니다. 코끼리는 어디로 갔나요? 가장 잘못된 질문이 우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코끼리가 방안에도, 몸안에도, 주머니속에도, 머릿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코끼리가 세계를 완전히 차지해버린 곳에서는 코끼리는 소속도, 섹터도, 좌표도 없이 존재합니다. 만질 필요도, 볼 필요도 없죠. 코끼리가 세계 그 자체, 아니 코끼리가 턱없이 비좁은 세계 바깥으로 삐져나옵니다. 코끼리가 예외까지 전부 다 차지해버린 세계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거짓 딜레마, 당신의 잘못된 질문을 코끼리가 부숴버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관찰자가 아니라, 목격자가 되어 증인석으로 불려 나왔습니다. 당신은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면서 동시에, 개인적 취향과 도덕, 위치와 세계관에 하등 상관없는 사실 그 자체만을 간신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당신은 침묵하거나 대답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고통은 예외가 존재할 때에 가능합니다.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존재한다고 믿을 때, 고통이 존재하는 것이죠. 고통이 전부인 세상에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코끼리가 전부인 세상이 당신을 목격자로 세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거기 동참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코끼리가 차지해버린 세계, 코끼리로 가득찬 사건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당신에겐 인력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아무 질량도 없는 좌표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문장이 당신이 독자로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박탈한다면, 당신은 목격자가 되거나,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코끼리가 사라진 세계와
답글삭제코끼리가 차지한 세계와
코끼리의 과잉에 관한 가장 잘못된 질문에 대하여,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당신은 이미 코끼리로 가득찬 세계를 향하여
목격자가 되거나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과잉이란
영역의 표식이 아니라
영역을 목격하는 자세와 태도
일지도 모르겠네요.
음, 이 글처럼 수미상관에 집요한 글쓰기에 얽매이곤 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어떤 문장이 대체 어떤 문장인지 매우 궁금해지는데요 ^^
그 대답은 2편에 계속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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